"버리고 나니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왜 그동안 버리지 못했을까?"
주말 이틀을 꼬박 집 정리에 썼습니다.
현재 집으로 이사 온 지 벌써 3년이 됐습니다. 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쌓여온 것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언젠가는 쓰겠지'라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방치된 물건들이었죠. 더는 못 보겠다 싶어 시작한 대청소였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 물건들만이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해서도요.
🚪 구역별 대청소 보고서
드레스룸 - 안 입는 옷이 왜 이렇게 많지?
첫 번째 전선은 드레스룸이었습니다. 옷걸이마다 빽빽하게 걸려 있는 옷들을 하나씩 꺼내보기 시작했는데... 정작 입는 옷이 몇 벌 되지 않았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이 옷도 있었구나"의 세계였습니다. 언젠가 입겠다는 기대, 이미 비슷한 옷이 있었다는 사실, 지금 몸에 맞지 않는다는 현실이 뒤섞여 있었죠.
에어컨 실외기실 - 무려 3년 만에 열어보다
두 번째 전선은 사실상 창고처럼 쓰이던 에어컨 실외기실이었습니다. 3년 동안 한 번도 꺼내보지 않은 물건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는데, 그 종류가 참 다양했습니다.
- 중고로 팔 때를 대비해 남겨둔 박스들 - 대부분 애플 제품 박스였습니다. 깔끔하게 보관은 했는데, 정작 팔 생각은 3년째 실행되지 않았죠.
- 고장난 DSLR 카메라와 렌즈 - 고칠 생각도, 버릴 생각도 없이 그냥 거기 있었습니다.
- CD 앨범들 - 재생할 플레이어도 없는 CD들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팬트리 & 현관 - 일상의 사각지대들
세 번째 팬트리, 네 번째 현관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팬트리: 유통기한이 걱정되는 구급 약품들, 코스트코에서 대용량으로 사놓고 기억 속에서 사라진 생필품들, 핼로윈과 크리스마스 용품 같은 계절 장식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습니다.
현관: 각종 공구, 농구공·축구공·야구 글러브 같은 운동용품들, 그늘막 텐트를 비롯한 캠핑 장비, 세차 용품까지. 사 놓고 잘 쓰지 않은 물건들의 집결지였습니다.
🗑️ 버린 것들의 규모
이틀간의 작업을 숫자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75L 종량제봉투 3개
- 셀 수 없는 분리수거 횟수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한 번 버리기 시작하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쓸 일이 없겠다'는 판단이 서는 물건들은 과감하게 보내줬습니다.
🌿 버림의 가치 - 비워야 보이는 것들
정리를 마치고 나서 깔끔해진 공간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상쾌함인데, 그냥 상쾌함이 아니었습니다. 공간이 넓어진 것 이상의 무언가였죠.
생각해 보면 물건이란 단순히 공간을 차지하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무게로 우리의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써야 하는데', '팔아야 하는데', '버려야 하는데' - 이 작은 미결 과제들이 쌓이면 생각보다 꽤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정작 쓰지도 않으면서, 신경은 계속 쓰이는 셈입니다.
버린다는 건 단순히 공간을 확보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 물건이 점유하고 있던 생각의 자리를 돌려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3년치 짐을 보내고 나서야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가벼워진 이유가 그것이었습니다.
미니멀리즘이 요즘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주목받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적게 갖는 것이 미덕이라기보다, 정말 필요한 것만 곁에 두었을 때 그것들의 가치가 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물건이 많으면 정작 소중한 것이 묻힙니다. 소음이 줄어야 신호가 들리듯, 공간이 비워져야 남은 것들의 의미가 살아납니다.
💡 대단하지 않은 한 가지 결심
저는 솔직히 물건 욕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사고 싶은 건 사야 직성이 풀리고, 막상 필요 없어져도 버리지 못했습니다. 쓸모없는 물건들을 보며 희열을 느끼는 동시에 스트레스도 받았다는 게 참 모순적이죠.
이번 정리를 통해 거창한 철학을 얻은 건 아닙니다. 딱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필요해서 사는 건 어쩔 수 없다. 다만, 불필요하거나 수명이 다한 물건은 빨리 정리하자."
완전한 미니멀리스트가 되겠다는 선언이 아닙니다. 맥시멀리스트로 살되, 쌓이는 것들을 조금 더 빨리 알아채고, 조금 더 과감하게 보내주겠다는 다짐입니다.
3년 후의 저는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운 공간에서 살고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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